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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한적한 소도시 추천 (루마니아·슬로바키아·알바니아의 숨은 여행지 모음)

by beforetriptip 2025. 11. 19.

유럽 여행이라 하면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처럼 화려하고 북적이는 도시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유럽의 매력은 그늘진 골목과 적막한 성당, 그리고 낯선 언어가 울려 퍼지는 작은 광장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동유럽의 한적한 소도시들은 관광객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일상, 지방의 문화 정체성, 현지인의 호흡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여행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알바니아의 덜 알려진 소도시들을 중심으로, 단순한 ‘숨은 명소’를 넘어 살아보듯 머물 수 있는 유럽을 소개합니다.

루마니아 소도시: 시기쇼아라 (Sighișoara)

루마니아 중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시기쇼아라는, 흔히 ‘중세 유럽이 살아 숨 쉬는 도시’로 불립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는 다채로운 색감의 목재 건물과 돌바닥 골목길이 이어집니다.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마을이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며 도시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합니다.

시기쇼아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관광보다는 역사적 의미와 도시의 보존 방식으로 더 주목받습니다. 상업적인 체인점이나 대형 관광 시설은 없고, 지역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숙소와 식당, 갤러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점에서는 루마니아 전통 음식인 고기말이 양배추찜이나 옥수수죽과 사워크림을 곁들인 식사를 제공하며, 대부분의 식재료가 인근 농가에서 공급됩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14세기에 세워진 시계탑이 있으며,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됩니다. 이곳에서 루마니아 역사와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민속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이 적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도 여유롭게 가능하며, 가이드를 동반하면 건축 양식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낮고 조용하며, 상업화된 관광지가 주는 과잉 자극이 없는 공간입니다.

시기쇼아라는 특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도시입니다. 이는 루마니아가 오랜 기간 다양한 제국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그 문화적 혼종성이 지금도 이 도시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독일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간판이 공존하고, 유럽의 중앙이면서도 주변부였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소도시: 바르데요프 (Bardejov)

슬로바키아 동부에 자리한 바르데요프는 고풍스러운 외관을 가진 조용한 도시입니다. 도시는 격자형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도시 자체가 하나의 고건축 박물관처럼 보입니다. 이곳의 고딕 양식 성당과 목조 회랑, 그리고 15세기 상점 건물은 시대를 초월한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복원된 느낌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옵니다.

바르데요프는 중세 시대 슬로바키아의 상업 중심지였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도 중요한 요충지로 기능했습니다. 그로 인해 도시에는 게르만, 슬라브, 유대인 공동체의 흔적이 골고루 남아 있습니다. 시내에는 오래된 유대인 회당과 묘지가 보존되어 있어, 종교와 문화의 공존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독특한 점은 이 도시의 ‘조용함’입니다. 인구 3만 명 이하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분하고 절제된 일상은, 도시 특유의 ‘여유’로 다가옵니다. 광장 옆 벤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는 노인들, 햇살 좋은 오후에 아무 이유 없이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는 현지인들. 이런 일상이 곧 이 도시의 가장 큰 관광 콘텐츠입니다.

바르데요프 외곽에는 온천지구인 바르데요프스케 쿠페레가 있으며, 이곳은 단순한 스파 리조트가 아니라 19세기부터 귀족들이 요양하던 유서 깊은 온천입니다. 지금도 산책로, 요양병원, 약수터, 미술관 등이 함께 운영되며, 단기 여행자뿐 아니라 장기 체류자에게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알바니아 소도시: 지로카스터 (Gjirokastër)

알바니아 남부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지로카스터는 ‘돌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이름 그대로 도시 전체가 회색빛 석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건물의 지붕, 담벼락, 골목까지 모두 돌로 이루어져 있어 일관된 도시 풍경을 자랑합니다. 단지 시각적인 독특함만이 아니라, 이 도시가 지닌 문화적 배경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지로카스터는 오스만 제국 시기의 도시 계획이 현재까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유럽 도시 중 하나입니다. 집들은 모두 언덕을 따라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창문이 모두 바깥을 향해 열려 있어 이웃과의 소통이 용이한 구조입니다. 이는 공동체 중심의 도시 구조였던 오스만식 가옥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가장 큰 볼거리는 지로카스터 성입니다. 이 성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내부에는 역사박물관과 군사전시관, 그리고 야외 공연장이 있습니다. 과거 알바니아 공산정권 시절의 감옥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도시가 겪은 정치적 역사까지 함께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로카스터의 매력은 또한 현지인의 삶에 쉽게 녹아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주 열리는 지역 장터에서는 산에서 직접 채취한 허브, 수제 치즈, 양털로 만든 공예품 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카페와 식당에서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직원은 드물지만, 손짓과 웃음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적 소통’이 여행의 진정한 맛을 전해줍니다. 음식은 그리스와 터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고기 요리와 요구르트를 활용한 음식이 흔합니다.

알바니아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물가가 매우 낮은 편이며, 지로카스터는 수도 티라나나 관광지 블로러와 비교해도 훨씬 저렴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합니다. 은퇴 후 유럽 장기 체류를 고민하는 이들이 ‘시도해 볼 만한 도시’로 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 여행의 진짜 가치는 비싼 박물관이나 북적이는 거리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의 시기쇼아라, 슬로바키아의 바르데요프, 알바니아의 지로카스터와 같은 소도시들은 조용히 머물며 도시의 호흡에 맞춰 살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단기 여행자뿐 아니라 한 달 이상 체류하며 일상에 가까운 여정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선택지입니다. 지금껏 몰랐던 동유럽의 진짜 얼굴을 만나고 싶다면, 다음 여행은 대도시가 아닌 이 작은 도시들 중 한 곳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